윤오영(1907-1976)의 수필 중 '방망이 깎던 노인'은 1974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이 수필은 '한국 수필 75인집'에 수록되었으며, 1977년에는 '방망이 깎던 노인'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다시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이 글은 저자가 어린 시절 서울에서 경험한 짧은 에피소드를 회고 기법을 통해 담아낸 것으로, 일상적인 상황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삶과 가치에 대한 깊은 생각을 전합니다.
전문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세간난[1] 지 얼마 안 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방망이를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방망이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방망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방망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예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배가 너무 부르면 옷감을 다듬다가 치기를 잘 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죽기(竹器)는 혹 대쪽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곧 뜨거운 인두로 다리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죽기는 대쪽이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죽기에 대를 붙일 때, 질 좋은 부레를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소라 붙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소라 붙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약재(藥材)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숙지황(熟地黃)을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구증구포(九拯九暴)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구증구포란 아홉 번 쪄내고 말린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다섯 번을 쪘는지 열 번을 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 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방망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동대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방망이를 깎다가 유연히 추녀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2]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북어 자반을 뜯고 있었다. 전에 더덕, 북어를 방망이로 쿵쿵 두들겨서 먹던 생각이 난다. 방망이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다듬이질 하는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만호도의성(萬戶擣衣聲)[3]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擣衣聲)[4]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방망이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1] 결혼하여 가정을 차리다
[2] 도연명의 〈음주(飮酒)〉의 한 구절. '동쪽 울 아래에서 국화꽃을 따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 전원생활을 노래한 시다.
[3] '일 만 호의 다듬이질 소리'. 이백(李白)의 자야오가(子夜吳歌)의 한 구절.
[4] 그이를 위해 가을밤 다듬이질하는 소리. 판소리 열 두 마당 중 수궁가에 이 구절이 실려 있다. 출전은 당(唐)의 왕발(王勃)의 시 추야장(秋夜長)의 한 구절 위군추야도의상(爲君秋夜擣衣裳)으로 추정
[5] 에필로그 원작은 해당 웹툰 작가가 아니라 예전 PC통신, 나우누리 시절 VG 게임 동호회에 한 유저가 올려 큰 반향을 일으켰던 글이다. 방망이 깎던 노인 패러디 열풍의 시초라고 할 수 있었던 글. 원작 배경도 구 용산 상가였으며 당시 유명했던 용산개 도 언급된다.
[6] 히어로 갤러리 필수요소 항목 참조
[7] 여담으로 작품 말미에 언급되는 박공주 헌정시 역시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의 23060번째 포효가 그 원본으로 작품성이 매우 뛰아나다
[8] 밑줄이 쳐진 노인 부분에 마우스를 대면 나온다. 내용은 모든 방망이를 밯망이로 바꾼것이다.
서울의 동대문에서의 만남
40여 년 전, 저는 아직 갓 세간난이었고 서울에서 의정부로 내려가는 길에 동대문에서 전차를 내리고 청량리역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 길가에서 방망이를 깎는 노인을 만났습니다. 그 노인은 방망이 한 벌을 비싸게 팔고 있었고, 제가 싸게 사기를 원했습니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노인은 대답하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방망이를 깎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그는 무뚝뚝하게 깎아 나가며,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더 깎고 있었습니다.
"다 됐으니 그만 주십시오."라고 말했지만, 노인은 더 깎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차 시간을 놓칠 수 없었지만, 노인의 끈기에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그 노인은 방망이를 만들 때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제게 큰 교훈을 주었습니다.
방망이와 인생의 진리
방망이는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40년 전에는 방망이가 일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것을 만드는 과정은 노력과 인내의 결합이었습니다. 노인은 방망이를 만들 때 조심스럽게 다듬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삶에서도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희생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담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물건과 공예 미술품
옛날 사람들은 물건을 만들 때 그 물건의 아름다움에 집중했습니다. 그들은 소비자보다는 제품 자체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그로 인해 물건을 만들 때 흠잡을 데 없이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방망이를 만드는 노인도 이와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의 인내와 끈기는 그의 작품에 반영되었습니다.
노인에 대한 깨달음
노인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의 무뚝뚝한 태도에 화가 났지만, 방망이를 만들며 그가 보여준 끈기와 열정을 통해 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노인은 작은 물건 하나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아름다움과 가치를 찾아내려고 노력했고, 이것은 삶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깊은 교훈이었습니다.
결론
'방망이 깎던 노인'은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의 삶과 가치에 대한 깊은 고찰을 제시한 수필입니다. 노인의 끈기와 인내, 그리고 작품을 만들 때의 자부심은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줍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최선을 다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노력은 삶의 진리를 깨닫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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